2010년 9월 27일 월요일

잘가요, 언덕


잘가요, 언덕
(차인표, 살림출판사, 2009)

우연히 공지영 작가의 <도가니>를 읽은 바로 다음에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. 마음이 무겁고 답답한 상태에서 한 페이지씩 가볍게 읽다보니 <용서> 라는 거대한 존재가 나타나게 되네요. 용서의 무한한 힘을 느끼며 책을 덮게 되었습니다.

우리나라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약하고 못 살던 시절, 그 형편없던 시절을 버텨낸 우리 할머니,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써내려갔다는 이 소설에는 타인의 슬픔에 공명하는 저자의 예민한 감성은 물론,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, 아직 채 치유되지 않은 민족사의 상처를 응시하는 저자의 진중한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.
소설의 무대는 1930년대 백두산 자락의 호랑이 마을로 엄마를 해친 호랑이를 잡아 복수하기 위해 호랑이 마을을 찾아온 소년포수 용이, 촌장 댁 손녀딸 순이, 그리고 일본군 장교 가즈오를 주인공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에서 우리는 악역을 맡은 이조차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. 그리고 잘 가요 언덕은 가해자에 대한 이해와 피해자에 대한 깊은 연민이 어우러진 용서와 화해의 공간으로 독자에게 각인됩니다.
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같이 편한 마음에서 시작하여 약한 자의 서러움과 울음으로 치닫다가 용서로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이 작품을 통해 <도가니>에서 느꼈던 <죄와 벌>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<용서와 화해 그리고 주님의 사랑> 이라는 최고의 가치로 승화되어야 함을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. 

추천평)
주인공들의 애잔한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<잘 가요 언덕>은 어느새 우리 민족의 아픈 과거를 어루만져 용서와 화해의 시간 속으로 떠나보내는 일종의 상징적 공간으로 변모해 있게 된다. 이런 의미의 확산은 순전히 작가의 신인답지 않은 노련한 솜씨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. (……) 첫 장을 열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 전까지 결코 책을 놓을 수 없다. 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독자들을 유인하는 이와 같은 대중적인 이야기를, 잘 훈련된 문장과 형식, 그리고 구성과 주제의식으로 엮어낸 <잘 가요 언덕>은 신인작가로서는 가히 수준급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. 배우 차인표가 아닌 작가 차인표의 행보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역작!  - 이어령 (문학평론가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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